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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야곱여행사 삼위일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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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7. 16:58 카테고리 없음

posted by 주) 야곱여행사 삼위일체회
2024. 11. 11. 10:04 카테고리 없음

posted by 주) 야곱여행사 삼위일체회
2024. 11. 11. 09:56 카테고리 없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것이 낫다. …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냐 한다.’” (루카 17,1-3)

남을, 특히 순진하고 단순한 사람이나 젊은이를 죄짓게 하는 일은 ‘이중의 죄’를 짓는다. 하나는, ‘본인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죄’와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한 죄’이며 이 ‘이중의 죄’를 용서받아야 하고 보속하고 벌을 받아야 한다. ‘남을 죄짓게 하는 죄’가 진정으로 ‘무겁고 심각한 죄’인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그런 죄를 저지른 사람이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것이 낫다.’ 하고 말씀하실 만큼 몹시 과격한 표현을 쓰신다. 하나의 예로서, 내가 어떤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른 탓으로 그가 나에게 화를 내거나 나를 미워하게 한 것도 역시 그 사람을 ‘죄짓게 한 죄’다. 또한 나의 좋지 않는 말과 행동을 듣고 보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좋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도 내가 그 사람을 죄짓게 하는 것이다. 나의 말과 행동은 늘 누군가가 듣고 보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 오히려 나의 말과 행동과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과 모습을 상기시키고 따르게 하며 너도나도 함께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일곱 번 (즉, 몇 번이라도) 죄를 짓고, 일곱 번 (즉, 몇 번이라도) 용서해달라고 청해오면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 가령 그가 용서해달라고 청해오지 않아도 용서하는 것이 곧 예수님의 마음이다. 예수님을 늘 가까이, 친밀히 모시고, 그분의 마음을 가져야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말씀이 내 입에서 나오고, 그분의 사랑과 용서의 행동이 내 몸에서 나온다. 예수님이 먼저 당신의 목숨과 전부를 모조리 나에게 내놓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셨고 용서해 주셨는데, 내가 어떻게 그런 예수님을 내 목숨과 전부를 내놓아드릴 만큼 사랑하지 못하고, 그분 안에 누구라도 기꺼이 용서하지 못하겠는가!  

posted by 주) 야곱여행사 삼위일체회
2024. 11. 10. 17:21 카테고리 없음

예수님께서 …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 12,41-44)

‘렙톤’은 당시 ‘유다인들’이 사용한 ‘그리스 화폐’이며 ‘콰드란스’는 ‘로마인’이 사용한 ‘로마 화폐’다. ‘가난한 과부’가 헌금했던 ‘렙톤 두 닢’은 ‘3천, 4천 원’ 정도밖에 안 되는 금액이었으며 과부의 하루 생활비로도 부족한 금액이었다. 많은 ‘부자들’은 ‘풍족한 데’에서 ‘큰돈’을 넣었지만, ‘가난한 과부’는 ‘작은 돈’이지만 자기 ‘생활비’를 ‘전부’ 넣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부자들보다 더 많이 넣었다.” 하고 말씀하신다.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가’ ‘바치지 않는가’의 문제다. 내가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바쳤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전부,’ ‘남김없이’ ‘바쳤는가,’ ‘바치지 않았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들’을 바쳤다 해도,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을 바치지 않았으면 ‘많은 것들’을 ‘바친 것’도 별로 ‘의미가 없다.’ 자기가 그다지 아끼지 않는 것들은 얼마든지 쉽게 바칠 수 있으나, 자기가 ‘가장 아끼는 한 가지’를 바치는 것이, 아끼지 않는 나머지 전부를 바치는 것보다 더 어려울 만큼 ‘더 값진 봉헌’이 된다. 자기가 ‘가장 아끼고 가장 가지고 싶은 한 가지’를 하느님께 바치지 않는 한, 나머지를 전부 바쳤다 해도 별로 소용이 없는 노릇이다. 하나의 예로서, 내가 ‘가장 아끼고 가장 가지고 싶은 것,’ ‘가장 포기하고 싶지 않는’ 어떤 버릇, 흡연, 과음, 과식, 쇼핑, 게으름, 핸드폰이나 TV를 오랜 시간 보는 것, 자기 욕심만 채우고, 모든 손해와 불이익을 일제히 피하는 것, 남에 대한 무관심과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 자기만 말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 (미사와 기도를 전혀 하지 않는) 냉담, 기분이 좋고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미사에 가고 기도하지만, 기분이 안 좋고 바쁘면 미사에 가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변덕스러운 버릇 등등, 이 버릇들 가운데에 자신이 ‘가장 끊기 어렵고’ ‘가장 끊고 싶지 않는’ ‘하나의 버릇’을 끊지 않는 한, ‘다른 모든 버릇’을 끊었다 해도, 별로 소용이 없는 노릇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영성과 성화의 길에 성장이 없으며 늘 ‘현상 유지,’ 또는 ‘뒷걸음 지는 형편’일 수밖에 없다. 내가 제일 끊기 어렵고, 끊고 싶지 않는 어떤 버릇을, 주님의 도움으로, 끊어내야 비로소 다른 모든 버릇을 끊는 것도 쓸모가 있고, 그래야 비로소 영성과 성화의 길에 진정한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제일 끊기 어렵고, 끊기 싫었던 어떤 버릇을 고쳐낸 순간부터 나의 영성과 성화는 대약진을 이루어내며 그만큼 내 마음이 주님 안에 완전히 홀가분하고 상쾌하며 그토록 기쁘고 행복한 심정을 직접 맛볼 수 있다.  

posted by 주) 야곱여행사 삼위일체회
2024. 11. 4. 16:19 카테고리 없음

posted by 주) 야곱여행사 삼위일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