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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24. 17:06 교포성지순례



다음 편지는 쟈끄 샤스탱(Jacques Chastan) 신부님이
프랑스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1939년 9월)입니다.

구한말 조선에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 당하시기 직전에 작성하신 것입니다.

이 편지를 읽으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복음의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또한 복음은 이렇게 피를 먹고 전파되어진다는
사실도 배웁니다.

불쌍한 영혼에 대한 깊은 영적 긍휼함을 갖고 있는
한 선교사의 죽음이 고스란히 저에게도
전하여 집니다.

안일하게 살고있는 저의 삶이
이 순교자의 삶을 통해 부서지고,
가장 가치있는 삶에 드려지길 소망합니다.

순교의 시작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하루하루로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

지극히 사랑하올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께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올해에는 부모님의 소식을 듣게 되려나하고 기대해 보았으나,
아직 아무런 편지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빌 뿐입니다만,
제게는 작은 희생을 하나 더 주님께 바치는 셈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비할데 없이 좋은 곳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보다 앞서 가신 영광스러운 순교자들과 함께 영원한 휴식을
누릴 수 있게 되리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이 너무 상심하지 않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그러니까 15년 전부터 우리의 사랑하는 조선은 어느 정도 평온을 누려왔습니다.

박해 때문에 흩어졌던 신자들이 다시 모여들 수 있었고,
선교사들을 모실 수 있게 되어 큰 기쁨이었으며,
주교님까지 입국하시게 되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 뿐 백여명의 신자가 체포되고,
재산은 몰수당하고 육신은 매질로 만신창이 되었고,
혹형과 감언이설을 견디지 못한 신자들은
배교함으로 하느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단은 올해 들어 더욱 더 날뛰고 있는데,
지독한 박해때문에 나이,성별,신분에 관계없이
2달 동안 25명이나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참수, 치명하셨고,
5명은 고문 도중에 혹은 그 후유증으로 죽었으며,

150명 이상의 신자들이 감옥에서 같은 운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배교한다는 그 말 한 마디만 한다면 그 혹독한 고통에서
또 죽어가는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지만

주님의 은총에 힘입어 이 모든 형벌을 기쁘게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양떼를 흩어버리거나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목자까지도 잡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1일에는 주교님이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이 나라에 와 있는 두 선교사들을 잡아들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갓 입교한 예비 신자들까지도 선교사들에게
기꺼이 은신처를 제공해 주어 우리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신자들이 숨겨준 덕분에 넉 달 동안 숨을 수 있었지요.

그러나 우리 주교님께서 현 상황에 미루어 보건대,
지금은 목자가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때라고

현명하게 판단하시어,
직접 자수하심으로써 착한 목자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당신처럼 하시라고 말씀하십니다.

박해자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교님의 명령을 받들어 자수하라는 명령도
피신명령처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다만 이 모든 일을 통해 하느님의 좋은 뜻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이곳 조선으로 올 때 하는님을 위해 언젠가는 고통을 받아야 할 것임을
각오하고 있었고,

저는 이제 곧 순교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사랑하는 조선땅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5명의 신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있었고,

또 끔찍한 소식을 들으면서 겁에 질려 떨었던 게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용기의 은총을 주셨고,
심지어 10세에서 15세의 어린 신자들까지

혹독한 고문을 끝까지 견디며 보여준 덕분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내일 동료 신부와 주교님을을 압송해 간 장교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둘이 함께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감옥으로 끌고 가겠지요.

그 곳에서 주교님과 순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랑하는 열심한 신자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큰 위로가 되겠습니다.

어쨌거나 저의 온 마음은 주님께로 향해 있는데,
만일 이 좋은 기회를 통해 지극히 사랑하는 주님과
온전히 하나가 된다면,

부모님께서는 저의 이 큰 행복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주님께 크나큰 감사의 기도를 올려 주십시오.

제가 이 세상에서 부모님과 가족 모두를 사랑했던 것처럼,
하느님께서 순교의 문을 통해 천국에 들어가는 은총을 허락하신다면
그 곳에서도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이 편지를 통해
지극히 사랑하올 부모님, 형님과 동생,누이들,
친척과 친구 여러분에게 하직인사를 올립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제게는 금도, 돈도 없으니
유산으로 남길 것이라고는,

신자들이 마련해 준 옷 몇 벌이 전부인지라
뒤처리 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물질로 보면 가난하나,
십자가의 은총으로 보면 비옥한

이 조선땅으로 저를 불러주신 주님께
끝없는 감사를 올려 주세요.

이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더 길게 쓸 수가 없어요.

부모님, 형제 자매님,
자식으로서 사랑받았고 형제로 정을 나눌 수 있었음은
제게는 더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하기에 아들로서 부모님께,
한 가족 된 형제 자매들에게

사람으로 지닐 수 있는
가장 큰 사랑과 정성으로 인사드립니다.

Jacques Chastan(정야고보)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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